(서울=뉴스1) 허고운 정윤영 김예원 기자 =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집권 2기를 맞은 미국이 기존의 국제 안보 질서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미국은 오랜 기간 갈등 관계였던 러시아에 손을 내밀어 우크라이나전 종전을 시도한 데 이어 주한미군에 중국을 견제하는 역할을 부여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다른 나라를 방어하는 시절이 끝났다"라며 전통적인 안보 정책의 틀과 크게 다른 언급을 내놓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육군사관학교(웨스트포인트) 졸업식에서 "만약 미국이나 동맹들이 위협받거나 공격받으면 군은 압도적인 힘과 파괴적인 무력으로 우리의 적들을 없앨 것"이라면서도 "미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를 방어하는 게 주된 고려 사항이었던 날은 끝났다"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미국이 더 이상 '세계 경찰국가' 역할을 맡지 않겠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파격적인 안보관을 재차 확인할 수 있는 발언이지만, 북한의 '핵 질주'를 마주하는 한국의 입장에선 당장 '안보 리스크'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는 언급이기도 하다.
지난 22일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미 국방 당국자를 인용해 "미 국방부가 주한미군 병력 약 4500명을 한국에서 철수해 괌 등 인도·태평양 지역 내로 배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한 데 이어 나온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현재 미국이 고민 중인 안보 정책의 변화의 폭이 예상보다 크고 파격적일 수 있다는 관측을 나오게 한다.

국내 전문가들은 6월 출범할 한국의 차기 정부가 미국의 이 같은 안보 패러다임 변환 시도에 대응하기 위해 국익을 중시한 외교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한 한미 연합방위태세를 강화하면서도 한국군의 독자적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안보 정책 전환이 단순히 트럼프 개인의 성향에 따른 것으로만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한국도 감정적·임기응변적 대응보다는 중장기적인 방향성을 조속히 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국이 세계의 경찰 역할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는 미국과 조약·동맹을 맺은 많은 국가들에게 자국 방어의 책임을 강화하라는 뜻"이라며 "미국의 두 번째 원칙은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박 교수는 "새로 시작하는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라며 "그리고 북한의 재래식 위협에 대한 대응 능력을 확장해 미국의 부담을 줄일 필요가 있다"라고 조언했다.
김정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주한미군의 이동 혹은 배치와 관련해 중요한 것은 한국군이 얼마나 더 효과적인 대북 억제력을 독자적으로 갖느냐의 문제"라며 "3축체계 이상의 대북 억제를 위해 양적, 질적인 투입을 해야 하고, 해·공군도 능력을 향상시켜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미국이 대중국 견제를 중심으로 전략을 새로 짠다면 한국은 불가피하게 양안 문제(중국·대만의 갈등)에 연루될 위험이 높아진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라며 "중국에 대해 적대적인 의도가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하면서도, 이 지역에서 '현상 변경' 시도에는 반대한다는 원칙도 미국에 전달하는 대중 선제 외교, 대미 설득 두 가지가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제 '미국이 해주는 안보'에 대한 환상을 버리면서도, 기존의 한미관계에 급격한 변화를 우려할 필요는 없다는 제언도 있다.
유지훈 한국국방연구원(KIDA) 대외협력실장은 "미국의 요구를 우리가 전략적으로 잘 활용해야 한다. 예를 들어 방위비 분담 확대를 수용하되, 그에 상응하는 전략자산 배치 강화 등 방위력 강화에 대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라고 밝혔다.
유 실장은 "민감한 문제일 수 있지만 한국이 선제적으로 요구했을 경우 미국은 더 신뢰할 수도 있다"라며 "한미동맹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보인다면 중국도 우리를 압박할 수는 있지만 심각한 수준으로 괴롭히진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전략 변화에 우리가 너무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 일관성을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며 "외교의 일관성과 연속성이 없으면 우방국도 우리를 경시하게 되고, 우리가 어디에 초점을 둘지는 실무적으로 제기되는 옵션을 보며 판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