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는 세계로 뻗는데…K-복합리조트는 제자리
[규제의 덫, 묶인 관광]④ 세계가 전략으로 키우는 복합리조트
"카지노, 부대시설 아닌 관광 산업 전략 한 축이 돼야"
- 윤슬빈 관광전문기자
(서울=뉴스1) 윤슬빈 관광전문기자 =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 마카오 코타이스트립, 라스베이거스 중심가
전 세계 관광객들이 모이는 이들 장소엔 공통점이 있다. 단순한 호텔도 쇼핑몰도 공연장도 아니다. 복합리조트(Integrated Resort·IR), 도시 전체를 경험하게 만드는 공간이다.
하나의 리조트 안에서 자고 먹고 보고 즐긴다. 관광객은 오래 머물고 지역은 돈이 돈다. 국가의 랜드마크이자, 도시경제의 핵심이 된 이유다.
한국도 인천과 제주에 복합리조트가 있다. 전 세계가 소비하는 K-콘텐츠도 있다.
하지만, 이들을 묶어낼 전략이 아직은 부족하다. 시설은 있지만 '산업'으로 설계되지 않았고 콘텐츠는 넘치지만 연결되지 않는다. 복합리조트는 세계에선 관광 전략이지만, 한국에선 여전히 규제 대상일 뿐이다.
싱가포르에는 마리나베이샌즈와 리조트월드센토사, 단 두 곳의 복합리조트가 있다. 그런데 이 두 시설이 한국 전체 카지노 산업의 2.6배에 달하는 매출을 올린다.
한국카지노업관광협회(이하 카지노협회)에 따르면 2023년 마리나베이샌즈는 26억 8100만 달러(약 3조 60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리조트월드센토사도 16억 4800만 달러(약 2조 2000억 원)로 회복세를 이어가고 있다.
단순한 수치의 문제가 아니다. 이들 복합리조트는 도심 전체를 이끄는 브랜드가 됐다. 마리나베이샌즈는 단순 호텔이 아니다. 쇼핑몰, 미술관, 전시장, 루프톱 수영장, 야경 명소를 모두 품은 '복합 콘텐츠 플랫폼'이다.
마카오는 복합리조트 중심으로 구조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한때 VIP 중심 베팅으로 수익을 냈지만, 최근 5년간은 쇼핑몰, 대형 브랜드 공연, 글로벌 전시를 결합하며 '머무는 관광지'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
2023년 마카오의 복합리조트 실적을 보면 MGM코타이 1조 6000억 원, 윈팰리스 8000억 원, 갤럭시 3조 9000억 원이다. 마카오 복합리조트의 2023년 전체(13개 업장) 매출은 8695억 홍콩달러(약 1조 5000억 원)를 넘어섰다.
필리핀 마닐라의 복합리조트 솔레어리조트는 지난 2024년 616억 페소(약 1조 5300억 원) 규모의 매출을 카지노에서 올렸다.
일본도 본격적으로 가세했다. 인공섬 유메시마에 2030년 오사카 복합리조트를 개장할 예정이다. 호텔 2500실, 국제전시장, 대형 공연장까지 갖춘 이 IR은 카지노를 3%에 불과하게 설계하고도 연 매출 5조 원을 내다본다.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2030년 개장을 앞둔 일본 오사카 IR은 강력한 위협이다. 총투자금만 1조 800억 엔(10조 8000억 원)이다.
문제는 그 여파가 한국 시장을 정조준하고 있다는 점이다. 강원랜드 대신 익명성이 보장된 일본 IR을 선택하려는 한국 내국인 수요, 외국인 전용 카지노의 주요 고객인 일본·중국 VIP의 이탈이 가시화되고 있다.
카지노협회에 따르면 2030년 기준, 한국 카지노 산업은 연간 약 2조 6000억 원의 매출 누출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중 강원랜드는 1조 3000억 원 가량의 손실을 예상한다. 전체 추정 매출의 65%가 증발하는 셈이다.
지리적 거리도 일본이 우위다. 오사카는 비행기로 1시간 30분 거리에 불과하며 관광 중심지인 교토와도 인접해 있다. 콘텐츠, 편의성, 개방성 모두에서 경쟁력의 축이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에도 복합리조트 형태의 시설은 존재한다. 인천 영종도의 파라다이스시티와 인스파이어, 제주 드림타워 등은 호텔, 쇼핑, 공연장, 식음시설, 전시 공간 등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제도적 분류는 여전히 '카지노 부대시설'에 머물러 있다.
광고는 제한되고, 입점 요건은 까다롭다. 외국인 전용 운영 조건과 관광숙박업·국제회의시설 등의 요건을 충족해야만 카지노 입점이 가능하다.
이러한 규제 구조는 복합리조트 전체를 유연하게 기획하고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데 장애물로 작용한다.
실제로 해외 주요 IR 사례가 도시 마케팅과 관광 전략에 통합된 반면, 한국의 복합리조트는 여전히 카지노 중심 규제 틀 안에 머물러 있어, 공연·전시·쇼핑 등 부대 콘텐츠와의 시너지를 충분히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쇼핑과 공연이 있어도 '체류형 관광 플랫폼'으로 작동하지 않는 이유다.
한국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K-콘텐츠라는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K-팝, 한식, 전통문화, 웹툰 등은 이미 관광 목적 콘텐츠로 세계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으나 이를 복합리조트에 통합하는 정책 설계는 여전히 미흡하다.
카지노협회 관계자는 "접근성이 제한된 강원랜드보다 관광과 카지노를 함께 즐길 수 있는 필리핀, 싱가포르 등을 선택하는 국내외 관광객이 증가하고 있다"며 "아시아 국가들과의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규제 중심의 운영구조에서 벗어나, 산업 전략과 콘텐츠 융합 중심의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광민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은 "해외는 복합리조트와 연계한 카지노 합법화를 통해 다양한 관광 경험을 설계하고 있다"며 "복합리조트는 관광객 체류 기간을 늘리고, 소비 지출을 확대하며 야간·실내 관광상품을 제공하는 등 관광산업 내 핵심 인프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 카지노 역시 도박·범죄라는 부정적 프레임을 넘어서 산업 운영의 목표와 사회적 역할을 명확히 하고 정책적 로드맵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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