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로 연금받고, 경제도 살린다"…함영주 회장의 '손님 사랑'
은퇴하면 '강남 부자'도 생활비 걱정…주택연금서 찾은 '새 기회'
대권 주자도 '주택연금 활성화' 한목소리…시장 선점한 하나금융
- 김근욱 기자
(서울=뉴스1) 김근욱 기자 = 하나금융이 지난 26일 금융권 최초로 출시한 '12억원 초과 주택연금'은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대중의 무관심과 각종 금융 규제로 가로막혀 있던 '민간 주택연금' 시장에 새로운 기회가 열릴 것으로 본 것이다.
은퇴 이후 생활비 걱정은 서민뿐만 아니라 이른바 '강남 부자'들도 마찬가지다. 자산 대부분이 부동산에 묶여 있는 '아파트 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자산가들조차 실제로자유롭게 쓸 수 있는 현금은 부족한 실정이다. 결국 주택연금을 통한 자산 유동화는 개인의 삶의 질을 위해서도, 국가적 차원에서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히고 있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금융이 '고가주택' 주택연금 시장에 뛰어든 것은 함 회장의 아이디어가 시작이었다.
그간 주택연금은 '서민용 상품'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집은 있지만 소득이 부족한 고령층을 위해 정부 기관인 주택금융공사가 도입한 정책성 금융 상품이기 때문이다. 가입 가능한 주택 기준도 한때 6억 원, 이후에는 9억 원 이하로 제한돼 있다가 지난 2023년 12억원으로 상향됐다.
하지만 은퇴 후 생활비 부족 문제는 서민뿐 아니라 자산가들에게도 공통된 고민이다. 자산 대부분이 부동산에 묶여 '현금 흐름'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은퇴한 '강남 부자'가 생활비 걱정을 한다는 얘기가 금융권에선 더 이상 놀라운 일도 아니다.
실제 한국은행이 이달 15일 발표한 주택연금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고령층(65세 이상)은 전체 자산의 85.1%를 실물자산, 즉 부동산 형태로 보유하고 있다. 이는 이탈리아(86.5%)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고령층 자산가' 손님들의 니즈를 잘 파악하고 있는 함 회장은 '고가 주택연금' 시장에 새로운 기회가 있다고 판단했다. 함 회장은 영업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대표적인 '영업통' 경영자로 고객이 있는 현장의 목소리에 누구보다 적극적이다. 고액자산가 영업력이 탄탄한 하나은행의 장점도 이번 주택연금 시장 개척에 일조했다. 하나은행은 1995년, 국내 최초로 자산가를 대상으로 한 프라이빗뱅킹(PB)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PB 명가' 타이틀을 지켜왔다.
하나금융의 주택연금 상품에 기대를 거는 건 손님 뿐만이 아니다.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은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지금, 주택연금 활성화는 국가적으로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
실제 이번 대선에 나선 유력 후보들이 모두 '주택연금 규제완화'를 공약에 포함한 것만 봐도 문제의 시급성이 드러난다. 이재명 후보는 가입 대상과 주택 가격 요건을 완화한 '6080 맞춤형 주택연금제도'를 제안했고, 김문수 후보는 1주택자와 귀농·귀촌자, 실버스테이 입주자에 대해 실거주 의무를 폐지하는 방안을 내놨다.
고령층의 자산이 시장에 풀리지 않으면 가계 소비나 기업 투자로 이어지지 않아, 이른바 '돈맥경화' 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 한국은행은 최근 '저성장에 늪'에 빠진 한국 경제의 해법으로 "주택연금이 활성화되면 소비 진작과 노인 빈곤율 완화에 기여해, 성장과 분배 양면에서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제언한 바 있다.
공적 주택연금 제도가 도입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상품 개발과 홍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현재 가입률은 1.89%에 그치고 있다. 하나금융이 '민간 해결사'를 자처하며 정부에 규제 특례를 요청한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다.
금융당국 내부에서는 '민간 주택연금' 상품이 금융지주회사의 본래 역할과 가장 잘 맞아떨어진다는 평가도 나온다. 은행은 구조적으로, 사망 시점까지 매달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종신형 대출'이나, 나중에 집값이 대출금보다 낮아지더라도 차액을 청구하지 않는 '비소구 대출' 같은 상품을 설계하기 어렵다.
이러한 구조는 보험 상품으로는 가능하지만, 보험사는 부동산을 대신 맡아주는 '신탁 기능'이 없고, 은행처럼 전국 영업망도 부족해 판매에 한계가 있다. 결국 금융지주 체제 안에서, 하나은행과 하나생명이 서로의 한계를 보완하며 '민간 주택연금'이라는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셈이다.
금융권은 하나금융이 민간 주택연금 시장에서 '선점 효과'를 확실히 가져갈 것으로 보고 있다. 초고령화가 불가피한 흐름인 데다, 주택연금 활성화가 사회적 과제로 빠르게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권이 '시니어' 시장을 새로운 먹거리로 보고 집중 공략하고 있는 만큼, 다른 은행들도 주택연금 상품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면서도 "하나금융이 혁신금융서비스로 먼저 인정을 받아 선제적으로 시작해 일정한 시간차는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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